<옛날 이야기>의 착상을 얻은 것은 귀국 직후의 교토여행(1893년 가을)에서였습니다. 기요미즈데라(淸水寺) 근처를 산책했을 때 다카쿠라(高倉)천황 릉 부근에 있는 세이칸지(淸閑寺)에 들른 구로다는 승려로부터 다카쿠라천황과 고고우(小督)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듣고서 현실에서 이탈하는 듯한 불가사의한 감동에 휩싸였다고 합니다. 이로부터 2년후 구로다는 <朝妝(아침화장)>을 둘러싼 나체화 사건 이후에 당시의 文相(현재의 文部大臣)이었던 사이온지 킨모치(西園寺公望)를 만나 <옛날 이야기>의 착상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. 이에 찬동한 사이온지의 주선을 받고 스미토모(住友)가와 계약이 성사되고, 그 다음해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착수했습니다. 본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목탄 소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전신, 부분, 나체에 이르기까지 꼼꼼한 데생을 그렸으며, 더욱이 유화로 된 습작을 그린 뒤에 완성작을 제작하였습니다. 제작이 완전히 끝난 것은 2년후인 1898년이었습니다. 그러나 완성작이 소실된 현재, 그림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하 자료가 <구도II>입니다. 구로다의 꼼꼼한 제작과정, 다수에 이르는 습작의 양을 보더라도 전성기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힐 수 있습니다.
구도












옛날 이야기 화고(畵稿) 소개















기타 풀베는 소녀의 얼굴 1896년 재료 1896년
구상화(構想畵)의 시도
본 작품은 신선한 환경에서 들었던 이야기에서 받은 감동에서 출발했으나, 구로다는 이야기 그 자체를 화푹에 담기 보다 자신이 감동했던 장소를 군상의 구성을 통해 재현하고자 했습니다. 구로다는 귀국한 후에 누차 언급했던 참된 그림, 즉 구상화를 실현하고자 했으나, 결과적으로는 현대 풍속화를 제작한 것이 되었습니다. 이들 일련의 유채 습작과 목탄 소묘는 전부 제1회 백마회전에 출품되었으며, 그 영향은 와다 에이사쿠(和田英作)의 <나루터의 석양(渡鳥の夕暮)>과 시라타키 이쿠노스케(白瀧幾之助)의 <배움(稽古)> 등 메이지 풍속화의 우수한 작품이 탄생한 계기를 마련했습니다.
또한 그 후의 구로다는 <지・감・정> 등에서 구상화를 시도했으나 완성도에 있어 화가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. 이와 같이 아카데미즘의 집약으로서의 구상화는 구로다에게 있어 생애에 걸친 과제이기도 하였습니다.